새해 벽두부터 불교계는 깨달음이 화두가 되고 있다. 이는 지난해 말 조계종 교육원장 현응 스님이 "깨달음은 선수행하는 게 아니라, 이해하는 것"이라는 견해를 밝히고 관련 글을 제방 스님들에게 보낸 데서 촉발됐다. 현응 스님은 "깨달음을 신비한 경지로 묘사해 이를 얻기 위한 방법도 불분명하고, 깨달음의 성취 또한 어떤 것을 말하는지 제대로 알 수 없다"며 오늘날 선수행 풍토에 대해 이의를 제기했다. 이어 최근 범어사 주지 수불 스님이 현응 스님의 주장에 대한 반박 자료집을 만들어 배포하면서 깨달음 논쟁은 불교계를 넘어 사회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다.
수불 스님은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눈을 뜨지 않고 어떻게 지혜가 열리겠느냐. 부처님도 여러 스승을 만났을 것이지만 만족하지 못하고 홀로 수행하면서 새벽 별을 보고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렀다"며 현응 스님 주장을 비판했다. "깨달음은 이해의 영역이어서 설법, 토론, 독서, 대화를 통해 얻을 수 있다"는 현응 스님의 주장에 대해서도 "부처님보다 나이가 훨씬 많은 제자 교진여 역시 짧은 시간에 깨달았다. 거기에 이해의 과정이 있었겠는가. 이해보다는 자각이 있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라고 주장했다. 수불 스님은 또 "우리가 믿는 다양한 신들(원인)조차도 크나큰 '어떤 것(원인 제공자)'에 의해 만들어졌을 것이다. 그 원인을 일으킨 원인 제공자를 자각한다는 것은 이해로서는 불가능하다"며 설명했다. 수행을 전제로 한 이해는 가능하지만, 단순한 이해는 알음알이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범어사 주지 수불 스님
선수행 풍토 이의 제기한
현응 스님 주장 반박
간화선 현대적 계승 주장
돈오돈수냐 돈오점수냐
불교계 다시 교리 논쟁
"깨달음과 이해는 범주가 완전히 달라 어떤 논쟁도 불필요한 '범주 오류'에 속한다. 현응 스님은 깨닫지 못해 더 큰 세상을 맛보지 못하는 오류를 범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조계종은 화두를 들고 참선하는 수행법인 '간화선'(看話禪)에 매우 민감하다. 조계종의 전반적인 가치는 수행이며 수행 이후의 깨달음을 위해 출가까지 한다"며 "조계종 교육원장으로서 이러한 민감한 화두를 끄집어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입장을 밝혔다.
수불 스님은 "종교는 양보다 질이 중요하다. 현응 스님 주장이 일반 대중을 설득시킬 수 있는지 모르겠지만, 수행자까지 설득시키려 해서는 곤란하다"고 주장했다. 또 "한국불교 중흥은 간화선을 현대적으로 살려내는 데 있다"며 "간화선법을 활용하지 못하는 현실을 반성해야지, 간화선법 자체에 대해 이의 제기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반박했다. 수불 스님은 현응 스님의 주장을 비판하면서도 현응 스님을 추켜세우기도 했다. "불교 교리에 대한 일반 대중들의 관심을 높이고 오랜만에 논쟁거리를 제공한 것은 현응 스님이 보살행을 실천하는 것"이라는 것이다.
보조국사 지눌이 '깨달은 후에도 꾸준히 닦아야 한다'며 주장한 돈오점수(頓悟漸修)와 성철 스님의 '깨달은 후에는 더 이상 닦을 필요가 없다'는 돈오돈수(頓悟頓修) 이론 이후 오랜만의 교리 논쟁이어서 불교계는 이번 논쟁을 대체적으로 반기는 분위기다. 박태성 선임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