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www.ibulgyo.com/news/articlePrint.html?idxno=124561머리 깎고 승복 입으면 이제 한국서 살 수 없는가…
■ ‘도넛 가게 사건’으로 돌아본 공공영역에서의 무차별 공격 사례
[0호] 2013년 03월 01일 (금) 17:15:51 불교신문 홍다영 기자 hong12@ibulgyo.com
어느 삭발날, 한 비구니 스님이 머리를 깎고 외출을 했다. 전철을 타고 가고 있는데 앞에 선 한 남자가 뚫어지게 스님을 쳐다봤다. 화를 내기도 그렇고 시선이 부담스러워 눈을 감아버렸다. 얼마의 시간이 흐른 뒤 전동차가 정차했다. 사람들이 우루루 내리는데 머리 위에 뭔가가 툭 떨어졌다. 느낌이 이상해 만졌더니 물컹하고 미끌미끌한 가래침이었다. 그 남성이 스님 머리 위에 침을 뱉고 지나간 것이다.
한 비구 스님은 명동 쪽으로 볼일이 있어 나가면 돌아다니기가 너무 힘들다고 토로했다. 시내 한 복판에서 선교하는 사람들이 그림자처럼 따라붙기 때문이다. 하루는 일면식도 없는 한 중년의 여성이 ‘지금 어디에 계시냐’며 갑자기 와락 껴안았다. 당황스러웠지만 ‘이러면 안 된다’며 타일렀다. 그러자 이 여성이 하는 말. ‘왜 여기 계십니까. 이제 하나님 품으로 가야지.’
한 비구니 스님이 지방으로 법회를 보러 가기 위해 KTX 열차를 탔다. 옆자리에는 젊은 남성이 앉았다.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자리가 좁아지는 것을 느꼈다. 스님과 가까이 앉으려고 그 남성이 몸을 밀착시키고 있었던 것이다. 스님은 가까이 오지 말라는 눈치를 주고 창 쪽으로 시선을 돌린 채 침묵을 지켰다. 기차가 대전역에 섰을 때 밖에서 누군가가 창문을 두드렸다. 옆자리에 앉아 있었던 남성이었다. 그런데 손에 스님의 두루마기를 들고 태연하게 손을 흔드는 게 아닌가. 도착지에서 황급히 택시를 잡아타고 절에 갔다. 이 스님은 도반스님에게 옷을 빌려 입고 예불을 진행할 수밖에 없었다.
2006년 한국에 온 한 외국인 스님은 지하철을 탈 때마다 하나님을 믿으라고 강요하는 통에 어려움을 겪어야만 했다. 스님이라고 말해도 막무가내였다. 당시에는 한국말이 서툴러 제대로 된 대응을 할 수 없었다. 동국대를 다니면서 교문에서 교회 전단지를 뿌리는 사람들과 말다툼을 하기도 했다. 스리랑카행 비행기에서 자신과 스리랑카인들에게 기독교 도서를 나눠주는 한국 대학생들을 만난 적도 있다. 참다 못해 인솔자인 목사에게 항의했지만 대수롭지 않다는 반응을 보였다.
공공장소서 침뱉고 욕설
대중교통 이용도 어려워
증오범죄 가능성 높아
적극 보호할 수 있는
대안 마련 ‘시급’
삭발하고 회색 승복을 입은 스님들이 겉모습과 종교가 다르다는 이유로 무차별적인 공격대상이 되고 있다. 욕설을 퍼부으며 얼굴에 침을 뱉었다는 이야기까지 들려올 정도다. 반복적으로 피해를 당하는 스님들에게서 ‘길거리를 돌아다니지 않는다’, ‘대중교통을 잘 이용하지 않는다’는 반응이 나오는 것도 당연하다.
이같은 사건은 증오 범죄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아 근본적인 대안마련이 시급하다. 증오범죄는 편견범죄로 불리는 것으로 인종이 다르거나 국적 종교 피부색 정치적 성향 성적지향 등이 다르다는 이유로 타인에 대해 편견을 갖고, 적대적 언어를 사용하거나 차별하는 것을 뜻한다. 이같은 증오 범죄는 심각할 경우 폭언과 폭행을 가하는 것은 물론 편견 대상을 완전히 제거하기 위해 살인까지 저지르는 만큼 상당히 심각한 범죄 유형에 속한다.
편견으로 인해 발생한 범죄는 피해자에게 더 큰 고통을 준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복수심에 의해 발생하는 일반 범죄와 달리 단지 ‘스님이어서’, ‘우리랑 다르니까’ 혹은 ‘종교가 다르니까’ 범죄 피해자가 된다는 것은 심각한 심리적 충격과 박탈감을 주기 때문이다. A스님은 “지하철에서 노골적으로 얼굴에 대고 ‘예수천당 불신지옥’을 외치고 움직이지도 못하게 해 수년전부터 대중교통을 이용하지 않는다”며 “자유롭게 다니지 못한다는 생각에 한동안 심리적으로 크게 위축된 적이 있다”고 털어놨다. 스님들이 상황에 따라 개별적으로 대응하거나 일방 통행식으로 자신들의 주장만 하는 이들을 일깨우기에는 이제 한계에 다다랐다. 그렇다고 손 놓고 쳐다만 볼 수도 없는 노릇이다.
조계종 교육부장 법인스님은 이에 대해 “부처님이 어떤 비난에도 증오로 맞서지 않았듯 불자들도 자비의 마음으로 바라봐야 한다”면서도 “시대와 기본예의에 어긋나는 것이므로 방관하거나 회피하는 것은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다”고 강조했다. 박광서 종교자유정책연구원 상임대표는 “어느 유치원생이 스님에게 침을 뱉어 심각한 충격을 받은 적이 있다. 스님은 수년이 지나 실토를 했지만 이는 결코 잘한 일이 아니다”며 “사회적 문제라는 점을 정확히 인식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미국이나 영국 등 선진국에서는 편견에 의한 증오심을 갖고 범죄를 저지른 경우 가중처벌 함으로써 증오범죄를 엄벌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이런 일이 벌어져도 처벌할 수 있는 형법이 없기 때문에 법 제정이 필요하다.
전문가들은 모욕적인 발언을 하거나 인터넷에 유포시키는 것만으로도 적극적으로 처벌하는 풍토가 중요하다고 지적한다. 당장 피해자가 발생하지는 않더라도 편견에 의한 증오적 표현이 존재함으로써 사회적 규범을 깨뜨리고 공공의 이익을 침해하기 때문이다. 김응철 중앙승가대 교수는 스님들에 대한 차별적인 공격행위를 ‘제노포비아’ 현상으로 진단했다. 제노포비아는 이방인에 대한 혐오현상을 말한다. 김 교수는 “소수자가 악행으로부터 보호받고 엄벌에 처할 수 있는 제도가 마련돼야 한다”며 “증오범죄에 대해 구체적으로 논의할 수 있는 특별위원회가 만들어져야 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