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0여 년의 세월 동안 붓과 먹을 지남으로 삼아 정진을 이어 온 금정총림 범어사 주지 경선 스님의 두 번째 선서화(禪書畫) 전시회가 11년 만에 열렸다.
범어사 성보박물관(관장 환응 스님)은 7월3일부터 8월6일까지 35일간 박물관 2층 기증전시실에서 ‘달빛에 새긴 묵(墨)의 언어, 월인-묵언(月印-墨言)’ 전시회를 개최한다. 범어사 성보박물관 특별기획전으로 마련된 이번 행사는 경선 스님이 지난 2011년 가을 ‘월인산방(月印山房)’ 서화전 이후 11년 만에 갖는 두 번째 개인전이다. 이번 전시에서는 스님이 수행과 포교의 여정에서 틈틈이 조성한 총 45점의 그림과 글씨 작품이 소개된다.
전시 첫날인 7월3일에는 행사의 시작을 알리는 개막식이 봉행됐다. 이 자리에는 조계종 교육원장 진우 스님, 부산 법륜사 회주 선래 스님, 부산불교연합회 상임부회장 마나 스님, 진광 정사, 금정구불교연합회장 고담 스님을 비롯해 범어사 본·말사 소임자, 지역 주요 사찰의 대덕 스님 등이 참석했다. 또 이병진 부산시 행정부시장, 백종헌, 김도읍, 최인호, 김두관 국회의원, 김재윤 금정구청장, 전호환 동명대 총장 등 재가 내빈들도 대거 참석해 전시회를 축하했다.
이날 금정총림 범어사 주지 경선 스님은 “지난해 11월 성보박물관을 신축 이전 개관하고 오는 가을 기증전시실을 준비하던 중 마침 한 달 남짓 기간이 남아 개인 전시회를 열게 되었다”며 “한창 그림을 배우던 시절 청남 오제봉 선생님께서 ‘글을 쓰는 사람은 3일을 쉬면 붓을 던져야 한다.’라고 당부해주셨던 말씀을 새기며 소임을 지내는 동안에도 붓을 옆에 둘 수 있었다”고 취지를 전했다.
이어 스님은 “11년 만에 갖는 두 번째 전시회인 만큼 어떤 작품을 내놓을지 무척 긴장되고 걱정도 앞섰다”며 “아무쪼록 전시회를 찾아주신 한 분 한 분께 깊이 감사드리며 스스로 초심을 잃지 않고자 붓으로 지남을 새긴 이 전시회가 저에게는 정진의 계기가 되고 오시는 모든 분께 박물관의 여러 성보를 마주함과 더불어 계절의 아름다움을 만끽하고 휴식하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고 소회를 전했다.
조계종 교육원장 진우 스님도 축사에서 “바쁜 일정 중에서도 작품 세계를 선보이시는 교구장 스님께 감사드린다”며 “뜻깊은 선서화 작품전이 성황리에 마무리될 수 있도록 많은 분께서 걸음을 해주시고 널리 성원해주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경선 스님의 선서화 정진은 반세기에 이른다. 스님은 1970년대 중반부터 청남 오제봉(菁南 吳濟峯, 1908~1991) 선생과 오진 이웅선(烏辰 李雄善) 선생에게 서예와 그림을 배웠다. 오제봉 선생은 해방 후 청남묵연회 대표와 동명서예원장을 역임하며 부산·경남지역에서 서예 분야의 일가를 이룬 인물이다. 이웅선 선생은 한국적 산수의 전형을 이룬 대가로 불린 청전 이상범 선생의 제자이자 문인화가다.
총림의 대중 생활을 철저히 이어온 스님은 후학들과 신도들에게 항상 일상이 곧 깨달음임을 당부한다. 선서화 또한 스님의 일상을 비추는 거울이다. ‘벽암록’의 ‘조주석교(趙州石橋)’, ‘강산고절처(江山孤節處)’, ‘불식(不識)’, ‘불회(不會)’, ‘산심수심선심(山心水心禪深)’은 산수의 정취와 어우러져 선심(禪心)을 표현한다.
분주했던 어부가 한시름 숨을 돌리고 유유자적한 물결과 바람을 가로지르는 ‘망중한동중정(忙中閑動中靜)’, ‘어부한사(漁夫閑思)’, ‘겁외어부(劫外漁夫)’, ‘춘유백화추유월(春有百花秋有月) 하유량풍동유설(夏有凉風冬有雪)’은 금정산(金井山)을 유영하는 금어(金魚)의 이심전심 같다.
안양암에서 바라본 ‘안양암 일출(安養庵 日出)’, 구름 속에서 나투는 ‘웅비(雄飛)’, 빛나는 여의주를 품는 ‘봉황 여의주(鳳凰 如意珠)’, 푸른 산과 떠오르는 태양을 그리고 시를 쓴 ‘한산습득가가소(寒山拾得呵呵笑)’는 범어사 도량 곳곳에서 마주한 풍경과 내면의 조우를 화폭으로 옮긴 듯하다.
경선 스님은 지난 2003년부터 2021년까지 범어사 성보박물관장을 역임했다. 특히 불자뿐 아니라 일반인도 불교를 바르게 이해하고 소통할 수 있도록 범어사 선문화교육관, 템플스테이관, 성보박물관을 신축하고 개관하며 금정총림 상마마을에 새로운 문화 도량을 조성하는 원력을 이뤄냈다.
그런 스님이기에 성보박물관에서의 전시는 각별하다. 스님을 향한 후학들의 존경이 담긴 선물이며, 범어사를 아끼고 사랑해 온 부산 시민과 불자들을 위해 펼치는 포교의 새로운 출발이다.
범어사 성보박물관장 환응 스님은 “이번 전시는 지난해 11월 신축 이전한 범어사 성보박물관에서 초청하는 특별기획전으로 오랜 세월 선서화로 정진해 오신 주지 스님의 법향을 글과 그림으로 소개하는 열린 법석”이라며 “월인삼매(月印三昧)에 이르는 선서화 한 폭 한 폭과 마주하며 겁외의 불연(佛緣)을 맺길 바란다”고 소개했다.
이날 전시회의 개막 후 저녁에는 성보박물관 앞마당 특설무대에서 ‘금정총림 범어사 성보박물관 신축이전 기념 산사 힐링음악회’가 열려 여름밤을 음악 선율로 장엄했다. 음악회에는 이번 행사는 박물관의 신축이전 개관을 기념하고 극심했던 코로나19로부터 일상회복 중인 시민과 불자들의 지친 심신을 음악으로 위로하며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열려 감동을 더했다.
세종국악단의 개막 연주로 문을 연 음악회는 마리톤 김동규 씨가 가곡 등을 노래, JGL아카펠라팀이 하모니를 선사했다. 불자 국악인 김영임 씨가 우리 가락을 펼치며 흥겨움을 더했으며 마지막 무대는 인기가수 알리의 화려한 무대가 전개됐다.
한편 범어사 성보박물관은 매일 오전9시30분부터 오후5시까지 관람할 수 있다. 관람료는 무료다. 매주 월요일은 정기휴무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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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주영미 기자 ez001@beopbo.com